카테고리 없음 / / 2023. 1. 1. 21:05

(7) 매일 소화불량

반응형

1. 소화가 안 될 때 

 

머리 아프고 소화가 안 돼서 더부룩하고 체한 느낌이 들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선택적으로 거친다.

우선 손을 딴다. 나의 손 따기 첫 경험은 10살 무렵 큰이모네서 뭘 잘못 먹었는지 얼굴이 노래지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엄마가 체했다면서 손을 따자고 하셨다. 그때 어린 나는 바늘에 기겁해서 필사적으로 방이며 마루며 도망 다녔는데 마침 마루에 줄이려고 시침핀을 꽂아 둔 옷을 잘못 밟아 시침핀에 새끼발가락을 찔렸다. 나의 손 따기 첫 기억은 아니 발 따기 기억은 눈물이 찔끔, 꺽 작은 트림, 체기가 쑥이다.

현재 나는 눈 감고도 약국에서 손 따는 바늘만 있으면 10손가락 10발가락을 다 숨도 안 쉬고 찌를 수 있다. 많이 찔려보니 그곳에서 나오는 피로 인해 왠지 모르게 희열이 느껴진다.(사이코패스 아님)

그래도 안 낫는다 싶으면 두 번째로 약국약 활땡수, 베땡젠 또는 생약 성분 가득하다는 약을 사 먹는다. 그런데 수술 이후부터는 약국약이 1도 듣지 않기 시작했다. 특히 활땡수를 마시고 나면 구토를 어찌나 하는지 토하다 토하다 결국 변기를 안고 쓰러져 있다. 술도 안 마시는 내가 과음한 다음날 직장인들의 마음을 이렇게 이해한다.

세 번째로는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병원으로 향한다. “속이 안 좋아요.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에요. 병원에서 약을 지어도 안 낫는 것 같아요.” 매번 오는 단골 환자이니 물론 위내시경 검사도 받아봤는데 약간의 위염 증상을 빼고는 위가 깨끗하단다.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봐요. 정신과 상담을 한번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2. 소화가 안될 때 증상

 

이러니 한번 체하면 하루고 이틀이고 그냥 낫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죽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기분 하루 걸러 하루 아프고 도저히 일상생활 영위가 되지 않았다. 하도 체하니까 혈액에 음식 찌꺼기가 도는 느낌, 그 피가 머리에도 가서 두통을 일으키고 위에 머물러 체기를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아프지 않은 날이 이틀을 넘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날도 아프게 될까 봐 늘 불안 불안했다.하루하루가 이유도 모르게 아프니까 보이지 않는 지뢰를 밟게 될까 매일매일이 살얼음판 같았다. 아프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아프면 안 아프게 하려고 온갖 신경을 쓰다 보니 내가 사는 게 안 아프려고 사는 것 같았다. 안 아픈 게 기본값이 아니라 아픈 것이 기본값이고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된 것 같았다.

 

3. 얼마만큼 아팠는지

얼마 전에 회식자리에서 누가 아프다더라 이야기가 나왔는데 술기운에 다들 본인이 제일 아팠다면서 누가 누가 제일 아팠나 자랑(?) 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본인이 얼마나 아팠는지 어필하는데 누구는 게실염으로 고생한 이야기, 맹장수술한 이야기, 다리 부러진 이야기 다들 시체실에만 안 갔다지 거의 죽었다 살아온 사람처럼 열변을 토했다. 나도 질세라 그들과 합류했다.

아침부터 지뢰를 건드린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고 개운하지 않은 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이런 날은 체기와 함께 위가 안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위를 움직이게 하려고 많이 걷는다.

나는 걷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이게 내가 속이 안 좋아서 걷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되고 좋아하는 것이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조차 구분이 어렵다.

오늘같이 출근하는 날은 당연히 그만큼 걸을 수가 없다. 하루 종일 기분 나쁜 두통과 메슥거리는 속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퇴근 후 성수에서 뚝섬을 거쳐 한양대 앞까지 걸었다. 그런데 단단히 뭐가 꼬였는지 1시간을 걸어도 단단히 삐져서 꼼짝도 하지 않은 남자친구처럼 위가 고집부리듯이 꼿꼿이 서있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토하면 편할 것 같아서 한양대 앞 약국에 들러 활땡수를 샀다. 효과는 즉 빵이었다. 먹자마자 약국 앞을 온통 오물 전쟁터로 만들어놓았는데 구토가 멈추질 않는 것이다. 이야...한 번 두 번 세 번... 정말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구토를 해본 적 있는가?

이러다 죽겠다가 아니라 토하면서 드는 오직 한 가지 생각 정말 죽는 게 낫겠다. 119를 부를까 하다 겨우 멈춘 구토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서 뻗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 몸에는 어젯밤 일의 훈장처럼 울긋불긋 빨간 물집이 겨드랑이랑 등 쪽에 일어났다. 병원에서는 대상포진이란다.

술에 취해 잘 듣지도 않는 사람들을 붙잡고 용에게 사로잡힌 공주를 구한 용맹한 기사 이야기처럼 구토하는 모션이며 대상포진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생겨서 아팠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다행이겠지? 술 취한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될 만큼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