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착한 암_ 많은 사람들이 착한 암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착하지만 않았던 갑상선암
인터넷에 갑상선암은 진행속도도 느리고 수술 받으면 생존률도 높아서 착한 암이라고 불린다고. 그런데 암이 착할 수가 있나? 극악무도한 암 앞에 ‘착한’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붙으니 ‘착한 연쇄살인범, 착한 이토히로부미...’ 이런 느낌이다.
어쨌든 ‘착한’이란 표현이 붙으니 수술만 받으면 만사오케이, 그리고 수술이나 항암과정도 그 닥 힘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쉽게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동안 받은 아버지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직장스트레스 또한 병가 15일안에 함께 풀고 가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수술로 인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었다. 실컷 쉬어야지!
2. 최신 수술_로봇수술
“로봇수술은 목에 흉터부분이 남는 목 절개 수술이 아닌 겨드랑이 쪽으로 절개가 들어가서 수술부위 흉터가 보이지 않는 최신 수술이에요.” 병원에서 로봇 수술을 권유했다. 사실 딱히 흉터이외에는 큰 장점이 없고 일반 수술보다 몇 배가 비싼 로봇수술을 굳이 해야 하나 싶었는데 시집 안 간 딸의 혼삿길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까 싶으셨던 엄마의 양보 없는 주장에 로봇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어디서 들은 정보일까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 의사가 대한민국 최고의 로봇수술 권위자라나 ... 가격, 최신, 최고 타이틀이 괜시리 기회인 것만 같고 설레 이기까지 했다.
‘입원하는 동안 뭐하지? 무슨 책을 사지? 노트북에 영화를 다운받아서 영화를 볼까? 열흘 넘게 병원에 있으면 지루할 텐데 뭐하지.’ 여행가는 사람처럼 입원 시 필요할 만한 것들을 챙기는 나에게 수술의 두려움이란 1도 없었다.
목뼈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비모양으로 있는 갑상선을 모두 절제한다고 했다. 그러면 갑상선호르몬을 평생 약으로 복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에는 그냥 몸에 있는 일부 기관을 없애지만 갑상선이 하는 역할을 하는 약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냥 사이다 페트병 뚜껑을 따고 열어서 다른 콜라병 뚜껑으로 닫으면 돼요.’ 하는 것처럼 병원에서는 쉽게 말했고 나 또한 쉽게 들렸다. 겪어보지 않고 귀로 들은 이야기는 너무 쉬웠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인생이 나에게만 선의를 베풀고 황금빛 미래를 아무 때나 활짝활짝 열어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인생이 나에게만 호의를 베푸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암수술도 쉬어가라는 인생의 호의로 느껴졌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여주인공이 햇살이 잘 들어오는 창가 옆 병원 침대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던데 역시 현실은 달랐다. 보험적용을 위해 6인실 병실을 이용해야했고 칸칸이 답답한 커튼, 커튼으로 둘러싸인 내 영역에는 쭈구리고 누울 수 있는 보호자용 간이침대, 6인의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봐야하는 취향을 전혀 반영할 수 없는 공용TV, 이미 다른 이들의 음식들로 채워진 공용냉장고였다.
이러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여유롭게 치료를 받고 요양을 하려는 계획은 여기서 버틸 수 있을 까로 바뀌었다.
2. 로봇수술의 반전_ 비싼가격, 장기간 입원
“또요?” 수술 전 입원을 했는데 간호사가 또 주사기를 들고 들어온다. 내안에 피는 다 뽑아서 검사하겠다는 건지 아침에 뽑고 점심에 뽑고 자기 전에 뽑고 자고 있는데 깨워서 뽑고. 지금은 로봇수술이 많이 시행되는 것 같은데 당시에는 정말 말 그대로 ‘최신’이었나보다. 어감이 주는 세련되고 신기술의 긍정적인 어감보다, 진짜 최신이어서 여기 저기 구경하러들 많이 왔다. 하얀 가운 입은 분들이 신기한 듯 특히 수술 후에 내 상태를 확인하러 많이 왔다.
사실 수술 당일 내 기억은 수술 직후 간호사인지 누군지, 모르는 누군가가 세차게 깨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다시 자면 안돼요! 숨 쉬세요. 크게 숨을 들이 마시세요. 안 그러면 큰일 나요."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 속에서도 미친 듯이 잠은 오는데 급박하게 나를 깨우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정신이 명료해질 때 쯤 나의 고통 또한 분명해졌다. “어....아.... 아오 음....” 무통증 주사를 맞았으나 유통증으로 인하여 그날 밤을 꼬박 샜다. 나와 같은 날 수술을 받은 환자분이 있었는데 끙끙 소리를 어찌나 크게 내던지 그 날 밤 두 환자의 앓는 소리로 그 입원실 사람들이 고생 좀 했으리라.
다음 날이 되고 그 다음 날이 되고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 앉아 가고 병원 복도에서 운동도 피 주머니를 차고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나와 같은 날 수술한 분이 가방을 주섬 주섬 싸면서 퇴원 한다는 것 아닌가! 이분은 직접 목 절개를 통해서 수술 받은 분인데 수술이 잘 되서 오늘 퇴원한다는 것이다! ‘어라,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로봇수술 권위자에게 최신 로봇수술을 받은 사람인데 왜 일언반구도 없지?’ 보통 3박4일 길어야 4박5일 퇴원한다는데 나는 칼슘수치가 낮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퇴원을 미루는 것 아닌가.
결국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에서 최고의 로봇수술 권위자에게 천만원이 넘는 최신식 로봇수술을 받은 나는 11박 12일 병원에 있다가 퇴원하게 되었다.